게임업계 '혐오 배제'에 여성단체는 '페미니즘 차별'

게임업계 '메갈' 논란...국가인권위 의견 표명에
2020년 07월 14일 18시 23분 41초

게임업계의 '사상검증' 논란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의견을 표명한데 이어 피해 당사자와 전국여성노동조합 외 32개의 단체들이 지난 8일 내려진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신속히 이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개발사들과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혐오'가 문제라며 지적하고 있다.

 

14일, '사상검증' 피해 당사자와 전국여성노동조합 외 32개 단체들은 게임업계 사상검증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일 내려진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신속히 이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향해 "게임 업계의 여성혐오와 차별적 관행에 관련한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였으며, 게임업체를 향해 "게임 이용자의 반인권적 진단행동 옹호를 중단하고 피해자를 업계로 복귀시켜라"고 성토했다.

 

2016년부터 게임업계는 페미니즘 또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사상검증 논란이 있어왔다. 그 시발점이 되는 것은 '클로저스'의 김자연 성우 교체 사건. 당시 '클로저스'에서 업데이트 될 예정인 새로운 캐릭터의 성우로 기용된 김자연 성우가 SNS에 '메갈리아'를 후원하는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고 이에 이용자들이 개발사에 항의, 결국 성우를 교체하게 된 사건이다.

 

이후 유사한 사건이 꾸준히 있어왔다. 게임 내 일러스트레이터나 성우가 '메갈리아' 혹은 극단적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발언을 SNS에서 하면 이를 게임 이용자들이 찾아내어 개발사에 항의, 개발사는 해당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물이나 성우를 교체하고 불편함을 느꼈을 이용자들에게 사과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김자연 성우의 트위터(좌)

한 개발사 대표는 논란이 심화되자 절을 올리며 이용자에게 사과했다(우)

 

개발사들은 게임 이용자, 즉 소비자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지만 이를 두고 여성단체들은 '개인의 사상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8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게임 업계 내 여성 혐오와 차별적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이번 의견 표명의 배경으로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페미니즘 관련 글을 공유하거나 지지했다는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다수의 게임 이용자에게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됐다"며 "이용자들의 요구로 사실상 업계에서 퇴출당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참고로 일부 게임업체들은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것일 뿐, 개인적인 신념이나 사상을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인권위는 "소비자의 요구가 인권·정의와 같은 기본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 요구를 무시하거나 소비자를 설득·제재하는 것이 책임 있는 기업의 모습"이라며 "게임 이용자들의 여성혐오·차별 언행을 적극적으로 방지하고, 여성 종사자에게 계약 중지 등 불이익을 가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게임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호를 위해 문화예술진흥법상 '문화예술'의 범위를 게임 분야까지 확장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도 게임 내 여성혐오와 차별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게임콘텐츠 제작 지원시 업체 선정기준을 개선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늘 모인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인권위의 결정을 신속히 이행하라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은 "우리는 게임업계에서 사상검증 내지는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직장·일자리·경력을 잃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면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참석해 뜻을 보탰다. 류 의원은 "게임업계 여성 종사자들은 차별에 노출돼 있다"며 "게임업계 경영진에게 촉구한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혐오 없이도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업계 문화를 조성하는데 동참해 달라. 업계부터 최소한의 책임을 바탕으로 소비자를 설득해나가라"고 주장했다.

 

나 위원장은 또 "게임업계는 사업자이기 때문에 '돈 되는 일 때문에 했다', '돈을 못 벌까봐 잘랐다'고 했지만 사회적 책임 없이 무책임한 발언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웹하드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불법동영상과 성 착취물을 올렸던 사람이 구속됐다. 이들이 게임업체 사장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날을 세웠다.

 


[사진 출처=한국여성노동자회]

 

그러나 나 위원장의 발언은 다소 비약이 심한 것으로 판단된다. 해당 일러스트나 작업물은 회사의 소유이기 때문에 이를 사용 할지 말지 결정은 오로지 회사의 권한인 일이다. 특히 '불법동영상과 성 착취물을 올렸던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하는 말 역시 개발사들이 불법을 저지르거나 누군가를 '착취'한 일이 없기에 잘못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최초 논란이 됐던 김자연 성우는 물론 최근의 '명일방주'의 축전 일러스트까지도 정당한 비용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개발사들과 게임 이용자들은 페미니즘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혐오가 문제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통 문제가 됐던 일러스트레이터나 성우들이 SNS에서 발언하거나 공유한 글을 보면 '남성 혐오'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일러스트레이터 교체로 사상검증 논란이 제기됐던 '크로노아크'의 이형주 대표는 "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개인 SNS에 프랑스 여성 운동 관련 글을 공유하였다는 이야기가 올라왔다. 그것 만으로는 문제의 소지가 되는지 정확히 판단되지 않았는데, 타 국가에 대한 비방이나 혐오 조장 글들이 공유된 것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커뮤니티내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됐다"며 "매출이 여기에 굉장히 휘둘렸다. 실제 스팀에서 환불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고 이 상황이 계속 지속되면 정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일러스트를 교체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또 1월 축전 일러스트 삭제 결정을 내렸던 '명일방주'의 개발사도 "일부 특정 사상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확인됐다"며 "우리는 어떠한 정치적 입장과 사상적 입장에도 치우치지 않고, 늘 중립의 자세로 모든 유저분들께 다가가고자 한다. 그렇기에 해당 게시글은 현재 전부 내려가 있는 상태이며, 재게시 예정은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중립을 지키기 위해' 삭제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명일방주'의 경우 역시 이용자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특히 해당 글을 본 한 이용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특정 성별에 대한 반감을 내보이는 문제는 가볍게 넘어갈 것이 아니다"라며 "특정 성별 전체를 비난하는 행위는 남녀노소 누구나 비판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정상적인 집단이라면 배제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역시 '혐오'가 문제라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페미', '메갈' 논란이 일면 아무래도 작은 개발사는 물론 큰 개발사도 수입에 영향이 있다. C모 게임이나 F모 게임을 보라. 특히나 작은 개발사는 생존의 위협까지 느낄 정도"라며 "여성 단체들이 '페미니즘'을 위해 이용하는 것 같다. 이건 페미니즘이나 성차별이 아니라 '혐오 표현'을 판단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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